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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이야기

성경 공부, 믿음의 삶를 마치고 – 김영국

2014 12 14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이렇게 평안을 가져 오는 것을…

지나간 오랜 세월을 옛 속성과 오만과 부족한 믿음의 마음으로 교회 생활을 가장해 온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지난 3개월간 이 모임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종천 형제님의 인도 하에 형제, 자매님들과 ‘믿음의 삶’을 함께 공부하면서, 믿음을 얻는 것은 홀로는 힘들고, 인도자의 가르침과 옆에서 동참하는 성도들과 공동체의 일동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 모임의 새로운 가족을 저에게 주신 것에 너무 감사합니다. 인순 자매, 정우 형제, 찬미 자매, 연우 형제, 종성 형제, 영조 자매, 종천 형제, 예전 자매… 참으로 귀한 가족입니다. 이 모임 전에는 부족했던 친밀감과 사랑을 이번에는 충만하게 같이 체험할 수 있도록, ‘믿음의 가족’을 새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한번 모임에서 끝이 아니라, 계속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축복 받고 살 수 있는 형제, 자매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또 이번 모임에서 연우 형제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는 자리에 서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로 말없이 책상 건너 앉아있었지만, 성령님이 우리 두 사람의 영혼을 축복해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서로 돕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좋은 자녀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젊은 최규진 목사님과 가족을 축복하여 주십시오. 앞으로 갈길이 힘들고 멉니다. 모든 한인 목장 성도님들이 한몸, 한 마음으로 목사님과 동행자가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우리 Village의 Johnson 목사님, 모든 목사님과 목자님들 그리고 성도들… 건강과 은사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끊임없는 지성과 사랑과 기도로 이 사람의 구원을 축원했던 동반자를 주신 것, 또 한결같이 기도해주신 목장식구들을 주신 것,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성경 공부, 믿음의 삶를 마치고 – 김예전

2014 12 14

우리 가정이 빌리지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것은 포틀랜드로 이사온 2001년부터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새로운 교회 문화, 교회 생활을 시작했지만, 늘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간섭하지 않고, 간섭받지 않으려는 우리들만의 영역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가, 우리는 지난 13년동안 한교회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그 많은 성경공부 클래스에 참여한 적도 없었고, 그것 때문에 마음의 부담감을 가져본적도 없습니다.

우선 12주동안의 시간을 Commit하는 것이 상상할 수도 없는 부담감으로 느껴졌고, 군중심리에 어울리며 따라가는 것 같은 것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너무 깊이 속하고 싶지 않은 오만함, 아니면 어떤 소속감이란 올무에 매일까봐 미리 겁을 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준비되지 않은 남편이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고, 더 부정적이 될까봐 조심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 성경구절 하나도 제대로 암송할 수 없는 이 노년에, 13년이란 세월이 지난 이 때에, 가장 기초 과목인 믿음의 삶을 같이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목이 끝날 때, 우리는 적어도 5개의 성경구절을 암송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항의 해도 ‘할수 있습니다’라고 인도자가 말하였고, 우리는 답하기를, “우리 우리가 10대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외울수 있습니까? 그런 것은 다 주일학교 다닐때에나 하는 것이지, 지금은 말도 안되요.” 그러던 우리에게, “지금부터 시작하시면 되요”라던 인도자의 말. 결국 인도자의 말씀에 순종하며, 간단한 성경구절들을 골라서 인도자에게 꼼짝 못하고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또 해보니까, 처음의 두려움이 좀 사라지는 것 같아서, 마음의 짐이 조금씩 덜어지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무엇보다, 뒤늦게 시작한 ‘믿음의 삶’ 클래스를 마쳤다는 것에 가슴 뿌듯합니다.

그렇게도 길게 생각되었던 12주가 어느새 훌쩍 가버리고, 그 12주간에 매이거나 희생하기 싫어서 도사리던 우리는 이것이 속박과 희생이 아니라, 축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만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히려 우리의 어리석음이었고, 희생이라고 피했던 그 시간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손실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클래스 시작하기 전, 분주하게 점심을 먹던 우리만의 테이블이 정겨웠고, 전에는 ‘뭐 저렇게 꼭 모여서 먹어야 하나’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이 다 무너지면서, 나눔의 기쁨, 북적거리는데서 오는 생동감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클래스 시초 첫단원 ‘황홀한 구원’을 배울 때 인것 같습니다다. 갑자기 나의 남편이, “나는 예수님을 영접했어요”라며 자신도 모르게 힘차게 강조하던 그 고백을 듣는 순간, 온 몸이 굳어버리는 듯 했고, 정신도 마음도 똑같이 충격으로 정지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그동안 그 사람이 마음 속에 움켜쥐고 있던 탄탄한 벽이 자신도 모르게 무너진 것입니다. 집요하게 닫고 있던 입이 열렸습니다. 오랫동안 갈등하며, 갈망하던 믿음을 선포하며, 순종과 의지로서 주님이 그의 삶에 주인이심을 공포한 것이지요. 우리는 이런 뜻밖의 감격을 경험하면서, ‘믿음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매주일 각자가 깨닫는 말씀을 나눌 때, 한 공동체 안에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형제 자매님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서, 그들의 삶과 마음을 만지신 하나님을 우리도 같이 만나게 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배경도 다르고, 신앙의 척도가 다 다르고, 세대차가 많이 나는 형제자매들이 모였지만,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하는 갈망이 있었기에, 가식이 없는 순수함이 있었고, 주 안에서 자유롭고 서로를 용납하는 사랑과 관용의 시간이었습니다.

구원의 감격과 함께, 옛속성에서 새속성으로 변하고,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온전히 믿고, 절망과 갈등이 있을 수 있지만 주 안에서 승리하며, 기도로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며,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은 어디나 하나님 나라이며…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며, 제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삶을 살도록… 많은 토픽들이 있었는데, 전에 알았던 것은 다시 정돈을 하며, 다짐하고, 새로운 면에서 신비한 진리를 접하면서 새 힘이 솟아나고, 결단과 각오로 활기가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이 나이에 한 교과서(?)를 다 읽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읽은 것을 토론하는데 참여하며, 말썽 부리지 않고, 학생의 도리를 해냈다는 것이 스스로 고맙습니다. 각 사람의 수준에 맞춰서 인도해주신 이종천 형제님의 섬세하신 배려와 인내하심 때문에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삶은 가장 기본적인 클래스라고 하지만, 구원받은 사람들이 가장 깊이 알아두어야할 소제들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끝났지만,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새로운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믿음의 삶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을 배웠다면, 시간에도 매이고, 암송도 해야하는 부담이 주어졌다하더라도, 그것을 해야하는 울타리 안에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풍성한 속박이었는지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따로따로 모여서, 친밀하게 하나님 말씀을 함께 읽고, 그 말씀을 우리의 삶속에 적용하며, 살아 생동할 수 있도록 갈망을 불어일으켜 주었던 지난 12주간의 시간을 마감하면서… 절대로 혼자서는 믿음 생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묵상 나눔 – 이지은

이 묵상나눔은 2014년 12월 11일 빌리지 새벽기도에서 나누어진 내용입니다.

“건강한 한 몸된 공동체”

고전12:21-27 본문말씀을 묵상하고 묵상한 내용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건강한 한 몸된 공동체” 라고 하였습니다
“날샘”에서 큐티를 도와주는 양식에 의거하여 본문을 묵상해보았습니다

관찰:

21절말씀을 보면 눈, 머리같은 지배적인 지체가 자기보다 낮은 지체들-손,발을 무시하고 쓸데없다고 자신의 우월감을 갖는 것을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럴수 없다고 하시나요?
27절에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지체의 각 부분이기때문입니다
또한 24절에서 하나님은 지체들을 고르게하여(영어로 combine-결합시키셨다) 우리의 약한 지체들을 귀하게 보호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몸 즉 교회를 만들어 놓으신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각 지체들은 서로 같이 돌보며 조화를 이루어 가는 의존적인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2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또한 각 지체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게 되는 건강한 한 몸된 공동체를 이루라고 도전하십니다

묵상 및 느낀점:

1. 27절에 “너희는” 누구를 정의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전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라는 말씀을 보면
“너희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즉 예수님안에서 거룩해지고 성도라고 부르심을 입은 모든자들입니다
나는 거룩한 성도-교회라고 나의 정체성을 확실히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교회의 하나됨은 교회의 정체성이며 본질임을 묵상했습니다

2. 25절의 “서로 같이” 라는 말씀이 유난히 눈에 띄었습니다
한 몸된 공동체는 비교하지 않고, 우월감으로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고, 서로 분쟁하지 않고, 소중하게 지체를 보호하며, 돌보아 주어야합니다. 혼자만 잘하고 가는 게 아니라 서로 같이 가야합니다.
그때 건강한 몸이 될 수 있음을 묵상했습니다

3. 지체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끌어앉는 것,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함께 즐거워해주는 삶을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삶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엡4:16말씀하시면서 나에게는 어려워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외에는 어떤 choice도 없음을 고백하게 하십니다

“온 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몸에 갖추어져 있는 각 마디를 통하여 연결되고 결합됩니다. 각 지체가 그 맡은 분량대로 활동함을 따라 몸이 자라나며 사랑안에서 몸이 건설됩니다”(엡4:16 새번역)

주님의 몸된 교회는 사랑안에서 행할때
몸이 자라나며 사랑안에서 몸이 건설된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씀에 의지하여 나아가겠노라고 고백합니다
적용:

2015 빌리지 한인부 사역 지원서를 적어 제출할때
오늘 묵상한 말씀이 적용되어, 교회의 정체성과 지체로서 나에게 주신 은사를 사용하는 통로가 되기를 기도하면서 적어내겠다고 적용해 보았습니다
기도:

주님!
나의 정체성을 확실히 깨닫습니다
교회의 일치를 위해 내게 주신 은사를 사용하는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주위의 연약한 지체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교회를 사랑으로 돌보며 섬길때
우리의 공동체가 건강한 한 몸임을
세상이 보게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 나눔 – 남미란

이 묵상나눔은 2014년 10월 1일 빌리지 새벽기도에서 나누어진 내용입니다.

전도서
서론인 1장 1절 ~ 11절 까지는 전도자 자신이 제시한 인생의 한계속에서 의미를 서술한 것이라면 12절 부터 18절 까지는 전도자는 지혜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했으나 지혜 자체도 헛됨을 깨닫습니다.
12절 ~ 18절 말씀을 3분류로 나눈다면

1. 12~13절→수고 뿐인 인생을 발견하는 지혜 입니다.
2. 14~15절→유익을 주지 못하는 지혜입니다.
3. 16~18절→번뇌와 근심만 주는 지혜입니다.

오늘 말씀에 지혜라는 단어가 13,16,17,18절에서 나옵니다. 지식이라는 단어가 16,18절에 나옵니다.
지혜는 무엇이며 지식은 무엇입니까?
또한 세상에서 지혜와 지식과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와 지식을 한번 생각 하고자 합니다.

세상의 지혜는→이치를 빨리 깨우치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입니다.
성경에서 지혜는→수없이 많은 광범위한 의미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원천’ 이시며 또한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어린시절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가 충만 하였다 하셨습니다.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나오는 삶의 모든것을 지혜를 가진 사람 즉,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능력을 가졌음을 뜻합니다.
세상지식은 어떻습니다? 교육, 학습,교제와 경험 등으로 얻는 정보, 기술을 뜻합니다. 성경에서는 잠언 1장 7절 여호와를 경회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이성적으로 아는 것이 아닌 신앙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 찬양하며 나아갑니다. 올바른 지식은 ‘하나님’께로 부터 나오며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지식은 하나님과 진실된 만남을 통해 얻을 수있습니다. 지식은 구원을 이르게 하는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를 따라 살더라도 결국 인생은 괴롭고 더 없는것 뿐입니다. 우리의 중심사상은 : 참된 지혜자 이신 예수님 안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행복과 기쁨을 누립니다.

첫번째 분류 12~13절 수고 뿐인 인생을 발견하는 지혜는 1장 3절 인간의 수고가 무엇이 유익한가? 전도자의 질문을 13절 괴로운 것이니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괴롭게 하고 수고하게 하신것이라 사람이 아무리 수고 할지라도 돌아 오는 것은 괴로움 뿐이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죄로 인한 인간의 타락은 죄인에게 수고와 고통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님은 기뻐하시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통 당하는 죄인을 구원하사 의와 평강과 희락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마음을 다하여 연구하고 지혜를 동원하여 찾을려고 했지만 괴로움뿐이였다고 고백합니다. 믿는 저희들은 마음을 다하여 연구하고 살펴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예수님 안에서 찾기 위해 애 쓰는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수고와 고통을 참된 지혜자에세게 의뢰할 때 해결이 됩니다.
현재 우리가 얻기 위해 애 쓰는 것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인생의 본질을 바라보는 바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것은 참된 만족을 줄 수 없기에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미래는 헛된것이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말씀하신 예수님께 우리의 삶을 의뢰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새벽기도에 나와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의 인생을 허락하신 세상에 대한 바른 안목을 주시기를 간청해야 합니다.

두번째 분류는 14~15절→유익을 주지 못하는 지혜입니다. 14절 모두가 헛되이 바람을 잡을려는 것이로다. 1장 2절에 헛되다는 것을 다섯번 나오는데 최상급 표현은 전도서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허무하다’ 의미는 자신의 계획이나 능력대로 살아갈수 없는 것이며 모든 지혜를 사용해 세상의 일을 이해 하려 하지만 14,17절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인간의 한계’를 고백합니다. 15절 한번 구브러진 것을 곧게 하는것이 불가능하며 이그러진 것을 셀수 없는것 처럼 세상은 왜곡되고 결핍되어 있습니다. 이미 죄로 인한 왜곡된 세상의 지혜는 사람과 사뢰를 온전히 세우는 일에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모순으로 가득차 있는 세상에서 유익을 줄수 있는 참된 지혜를 얻을수 있습니까? 사람은 세상을 온전하게 만들려고 시도 하지만 세속적인 산물은 왜곡과 결핍 하나님 존재를 부인 하므로 인간 왕국을 세우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그리스도 왕국 안에서 완전히 회복을 누립니다. 성도는 주님의 선하시고 지혜로운 말씀을 따라 살때에만 선하고 온전하게 살아갑니다. 무엇이 우리를 보다 나는 삶으로 인도 할수 있다고 여기십니까? 부? 문명 , 과학기술, 사회 구성원 등 살아 가면서 필요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바꿀수 없고 세상을 변화 시킬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세상 지혜와 비교 할수 없는 주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귀 기울어야 합니다.

세번째 분류는 16~18절→번뇌와 근심만 주는 지혜입니다. 전도자는 13~15절에서 지혜를 통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던 전도자의 결론은 헛되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는 것을 연결해서 이 구절을 이해 하면 됩니다. 16절 내가 내 마음속으로….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이 부분은 전도자 소유자의 지혜를 자랑하는것 보다 많은 지혜를 소유한 자신도 인생의 의미를 발견 하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고백 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라는 표현을 사용 되었습니다. 17절 바람을 잡으려는 것을 지혜를 추구하는 것을 미련한 것과 아는 것이라는 두가지 극단의 길을 설명합니다. 인생의 의미를 알기 위해 의문을 갖습니다. 미련한 것과 미친 것까지도 추구해야 하는가? 서로 정반대인 두 사물이나 대상을 들어 ‘하늘과 땅’ ‘ 동과 서’ ‘선과 악’ ‘생명과 죽음’ 능력의 한계를 인간은 모든 지혜와 지식을 추구해 보아도 결국 바람을 잡으려는 것입니다. 지혜의 한계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에 오히려 번뇌와 근심에 빠지게 합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피할 수 없는 죄인에게 임하는 파멸을 피할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 불순종한 인생은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파멸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세상 지혜를 사용합니다. 미친것과 미련한 것을 미친것이란 전도서 9장 3절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존재를 알고 피하려 합니다. 디도서 1장6절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않는자요 모든 선한일을 버리는 자니라. 누구도…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수 없기에 세상 지혜는 무용합니다. 참된 지혜자이신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문제의 근원을 해결 하기에 기쁨을 줍니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참된 지혜입니다. 18절: 지혜가 많으면 번뇌가 많으니,번뇌: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 작용을 가르킵니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괴롭고 우울하여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입니다. (대표:사울왕) 성경에서 사울왕이 생각납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 보면 너무나 요즘 심각한 상태입니다. 전도자는 지혜의 한계를 고백하며 지혜와 지식을 추구하는 삶이 인간에게 번뇌와 슨심을 준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성공하게 한다는 온갖 방법들이 도리어 많은 근심을 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지혜는 인생의 파멸로 이끌어 가기에 우리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메시지가 세상 지혜로 부터 온 것인지? 그리스도 말씀으로 부터 온 것인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에 관심과 귀를 기울이고,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살펴야하며 세상 지혜에 마음을 사로 잡혀 근심에 빠지지 않는지? 우리를 파명 시키려 하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오늘도 그리스도 말씀에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 할수 없을을 깨닫고, 우리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절대자 이신 하나님을 바라 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 바라보가” 히 12:2. 하나님 없는 지식은 곤고함과 괴로움뿐입니다. 하나님 없는 지혜는 우리의 생명이 끊어짐이요 파멸뿐입니다. 우리가 만나야 할 참된 지혜자는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우리 공동체, 새벽을 깨우는 예배자들은 오늘도 생명고 기쁨을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좁은 길을 걸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난은 파멸이 아닙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없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묵상 나눔 – 최정훈

이 묵상나눔은 2014년 9월 25일 빌리지 새벽기도에서 나누어진 내용입니다.

에스라서 7장 11절 ~ 28절

오늘 본문 11절에서 26절까지는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의 내용이고 그 뒤 27절과 28절은 하나님께 대한 에스라의 찬송의 고백입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에스라에게, 왕이 내린 조서의 내용을 보니, 많은 양의 은과 금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살 수 있게 하고 또한 창고지기에게는 에스라가 구하는 것을 아끼지 말고 내어주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이방인었던 아닥사스다 왕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선물을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예루살렘까지의 여정과 앞으로 그곳에서 살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들을 맞이하게 될, 먼저 예루살렘에 귀환해서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이 조서의 내용은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하나님의 성전과 성벽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성전 재건을 방해하고 자신들을 위협하는 무리들에 대항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구성원들 사이의 내부적인 갈등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시간들을 보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닥사스다 왕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 빌리지 한인부 공동체에서도, 지난 20년 동안 이런 어려운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은 우리도 앞으로 또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생각하며 교회 안의 형제 자매와 세상의 이웃들, 그리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는 공동체가 되도록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처럼 우리에게도 위로와 격려의 선물을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두번째로 제 마음에 들어온 내용은 하나님께 대한 에스라의 찬송과 고백입니다. 그는 왕의 마음에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했고, 자신이 힘을 얻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하나님의 손이 자신 위에 있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본문 앞부분에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이며 제사장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도 뛰어났지만,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고 또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지도자를 갖게 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또 하나의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교회의 리더쉽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빌리지 교회의 미국 목회진과 한인부의 목사님, 그리고 저희 목장의 목자님이 생각났습니다. 그 분들이 에스라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에 힘쓰고, 말씀처럼 살려고 노력하며, 이로 인해 감사와 찬송을 드릴 줄 아는 리더가 되도록 기도하면 저는 그런 지도자들을 갖는 복을 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분들로 인해 제가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믿음이 자라서 저도 에스라처럼 ‘하나님의 손이 나를 도우셔서 내가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도했던 분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일에 동역자로 일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기도
하나님, 오늘도 이렇게 모여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마음을 갖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 주시는 분임을 오늘 말씀에서 보았습니다. 저희도 어려운 상황에 맞서게 되었을 때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그 문제들을 잘 해결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격려를 경험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하여 교회에 세우신 리더들과 성도님 한 분 한 분이 매일매일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며, 감사와 찬송을 드릴 수 있도록 저희와 함께 해 주시고 힘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는 하루가 되기를 기대하고 저희에게 주실 은혜를 사모하며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 나눔 – 지종성

이 묵상나눔은 2014년 9월 11일 빌리지 새벽기도에서 나누어진 내용입니다.

에스더서 8장 11-17절

에스더서는 4명의 주요인물, 에스더와 모르드개, 아하수에로왕과 하만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10번의 잔치 축제, 5번의 세상 잔치, 5번의 하나님 나라 잔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는 이들을 통하여 어떻게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았고, 또 어떻게 그들의 명절인 부림절의 기원이 된것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에스더서의 주제는 유대민족의 구원뿐 아니라 샬롬의 완벽한 상태로서 회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스더서는 비교적 짧은 10장으로 되어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번도 나오지 않는 유일한 성경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다 하여도 이 책에서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유대인들의 역사가 담겨져있습니다.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역사개입,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심판등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수 있습니다.

그들의 역사를 돌아보면 알수 있습니다. 유대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죄로 그들의 나라가 바베론에 의해 멸망하게 하셨고, 또 많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포로로 잡혀간 후에도 하나님은 약속대로 70년후 바사의 고레스 왕의 하나님에의한 칙령으로 1차 포로 귀환이 있었지만 돌아가지 않았던 그들 자손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그 이방나라의 문화에 동화되어 우상숭배하고 하나님을 멀리 하였기에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였지만, 격노하여 그들의 영원한 원수인 아말렉의 후손 하만을 등장시켜 유대민족이 멸절위기에 직면하게 될때,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신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통하여 디아스포라 유대민족들을 3일간 금식기도로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왔고, 또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보호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면 도저히 일어날수 없었던 일들이 이 책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연이란 것이 결코 없습니다. 모든 것이 철저하게 준비하시고 계획하신 섭리에 의하여 이루어진 필연의 결과인 것입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에스더나 모르드개가 아니라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주권자 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이루시되 모든일을 혼자하지 않으시고, 필요한 사람들을 등장시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바로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대로 우리들과 같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동참하시기 원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불러주실 때 응해야 합니다. 항상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으시는 그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만날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2)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를 통해서 볼수 있게 되고

3)   환경변화의 고난을 통해 스스로 낮아지게 하시며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며

4)   기도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응답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날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 8장 11절에서 18절까지는 4파트로 나누어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첫째 11절에서 12절은 승리를 주시는 그리스도입니다.

새로운 조서는 승리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유대인들을 죽이려는 하만의 조서에서 유대인들을 살리려는 모르드개의 조서로 바뀌었습니다. 모르드개의 조서는 유대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고 생명력의 회복이었습니다. 이것은구약의 율법에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바뀐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죄인인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하나님은 사랑으로 새로운 법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한 구원의 소식인 것입니다.

둘째 13절에서 14절은 승리를 전하는 성도들입니다.

모르드개의 조서는 빨리 수산성에 반포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승리도 빨리 온 천하에 전파되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승리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성도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 성도는 가슴 속에는 복음이 있습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선교사로 나가야 하고, 또 성경이 없는 민족에게는 그 나라 언어로 성경책을 보급해야 합니다.

셋째 16절에서 17절은 승리를 누리는 성도들입니다. 모르드개의 조서가 반포되자 유대인들은 이미 승리한 것처럼 기쁨으로 가득찼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얻게 되는 모든 승리와 영광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함께 하신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것을 깨닫고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15절에 모르드개가 제2인자로 등장합니다. 이것은 마치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과 창세기 때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요셉과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도 하나님의 섭리로 2인자가 되어 유대 백성들을 살렸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위인전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이루셨고, 또 앞으로 우리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시려는 약속을 우리들에게 계시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 안에서 영적 싸움을 잘 이겨야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승리를 누리는 성도들은 예수님 앞에 모여야 합니다. 교회의 온 성도들이 구원 받은 것을 즐기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열어야 합니다. 구원의 잔치가 있는 곳에는 불신자들이 들어와서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생명의 호흡을 주시고, 또 새 날을 열어 주시여 새벽기도 재단을 쌓을 수 있ㄷ록 허락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오늘 에스더의 이야기를 통해서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모든 도움의 손길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희들도 주님이 이루시려는 하나님 나라의 일에 동참할 수 있도록 불러주실 때, 에스더와 같이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결단으로 용기있는 순종으로 주님께 나갈 수 있도록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또 하만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에 회개하고 고백하오니, 모르드개 같은 신앙과 성품을 닮아가는 성도가 되도록 성령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만 바라보며 맡겨진 일에 성실과 최선으로 임하게 건강을 더하여 주시오 힘찬 하루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 나눔 – 김하운

이 묵상나눔은 2014년 8월 25일 빌리지 새벽기도에서 나누어진 내용입니다.

마가복음16:9-20

1.부활의 복음 (9-14 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난 사건이다. 인류 역사상 예수탄생과 더불어 가장 중요하고 획기적인 뉴스 사실이다.

9-11이 최고의 뉴스를 주님은 누구보다도 가장 미천하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 첫번째로 알리셨다.

성탄일에도 세상적으로 가장 권위있고 Power 가있는 헤롯왕이나 대 제사장이 아니라 먼곳 동방박사와 양치는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알리셨으며

부활의 소식또한 어떻게 보면 보잘거 없는 여인,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셨다.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아니 일곱 귀신까지 쒸워졌던 불결한 여자였다.  주님은 세상적 기준과는 달리 겸손하고, 심령이 가난한자,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자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시어 첫번째 증인이 되게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마리아가 부활의 놀라움과 충격을 극복하고 다른제자들에게 전하나 믿지 않는다

12-13 누가 복음 24장에 언급된 엠마오로 가던 두사람과 동인한 인물처럼 보이는 두사람에게도 나타나신다. 누가에선 눈을 가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나 떡을 나눠 먹으면서 눈을 뜨게 하시어 예수님의 부활를 확인 시키셨다. 이 두사람들도 예수님의 부활를 다른 제자들에게 전달하지만 그들이 믿지 않는다. 

14 주님이 직접 제자들에세 나타나시어 그들의 믿음 없음과 믿음의 완악한것을 꾸짖으신다.

누가 복음 24:38 why are you troubled, why do you doubt rise in your mind?

이는 주님의부활의 복음을 믿지 않음이라. 믿는다는 복음을 믿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죽이시고 다시 살리셨음을 믿는걸 의미.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인들의 선포에 대한 믿지못하는 제자들의 반응..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성경의 모든 곳에서 약속한대로 예수님이 죄와 사망과 사탄의 세력을 멸하고 승리하셨다는 기쁜소식이고 이를 믿는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다는 복된 소식이다.

인간이 상상도 못할 하나님의 초자연적이 능력을 나타내신, 즉성경의 모든 약속이 실제로 성취되었음 확신하게 하는 객관적인 역사적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Son of God ! 를 증명하시고 확신하고 믿음과 회심을 을 generate 한 최고의 기쁜소식이며 불변하는 소망을 제시하기에 모든이에게 전해야한다.

2.구원의 복음 (15-16절)

첫번째 증인인 여인들에게 사명을 주신다 가서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을 전하라 한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온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할것을 친히 명령하셨다.

왜 만민에게 전파하시라 하셨을까? 세상엔 차별과 불평등과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 빈부의 차이, 권력, 명예, 영향력등에 좌절, 낙심, 소망을 잃고 살아간다.  그런 죄와 사망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Fallen World에서Broken hearts로 살아가는 만민들에세  희망의 메세지를 전해주라는 공평하신  주님의 커다란 은혜와 사랑! 주님의 창조주로서 모든 피조물들을 기억하시고 살피시며 다 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며 누구나 차별없는 구원의 대상임을 드러내신다.

그 복음에 대한 반응, 믿는 여부에 따라 구원과 심판이 결정됨을 심각하게 인식하며 복음을을 전해야한다. 영생과 심판은 바로 우리의 믿음의 여부에 달려있다. 진지한 영원의 문제로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것을 최우선 순위로 두어야한다.

3.능력의 복음 (17-20절) :

17절  믿는사람들에게 따르는 표적 (어떤것을 확증하는 이적) :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탄을 쫒아내고, 새로운 방언을 말하고, 뱀을 잡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 우편에 좌정 :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과 사명을 환수하셨다는의미와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가지고 교회와 온세상을 다스리심을의미.

우리가 복음을 전할때 표적과 능력이 나타나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날것을 약속하셨다. 주님의 능력이 복음전파를 통해 반드시 나타나신다.

복음을 통해서 나타나는 가장 큰 역사는 죄와 사망에서 고통당하는 자들이 복음에 반응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생명과 능력이 드러나는 것이다.

 20 절 “ 제자들의 복음 전파 사역이 예수님과 함께 역사하실때 이루어진다.

제자들은 곳곳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는데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고 표적들이 나타나게 하셔서 그들이 전하는 말씀이 사실임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

기도 :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로 하나님 나라게 임하고 주님의 재림하실때까지 복음을 땅끝까지 온세상에 전파하고 회복과 변혁의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오늘의 우리에게도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주위에 소외되고 낙심, 좌절하고 삶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인생의 궁긍적인 소망과 생명되심을 전하는 은혜의 삶을 살수 있도록 하소서.

주님을 믿고 고백함으로 영원한 생명으로가는 구원의 길이 있음을 담대하게  주위 사람들에세 전하도록 역사하시고 축복하여 주소서.

나의 능력과 경험에서 나오는 오류를 밟지 아니하고 복음 전파 과정에서 오는 고난과 좌절에도 포기하지말고 담대하게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과 함께 일하는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마태복음 28:18-20

예수께서 나이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세 분부한 모든것을 가르쳐 지키게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한 복음 3:18

그를 믿느자는 심판받지 아니하는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것이니라.

묵상 나눔 – 김예전

이 묵상나눔은 2014년 8월 18일 빌리지 새벽기도에서 나누어진 내용입니다.

마가복음 14장 66-72

목사님이 아니고 엉뚱한 사람이 나오게 되서 많이 실망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의 부탁을 거절 못하고 순종하는 맘으로 나왔으니까,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 부인하고, 닭이 울고, 베드로가 울었다라고 요약할수 있을것 같아요. 저는 베드로의 실패와 닭소리, 그리고 회개 의 눈물에 대해서 묵상을 해 봤읍니다.

먼저, 베드로의 하락, downfall 에 대해서 생각해봤읍니다.

저는 베드로의 하락이 오늘 본문 66절에서 갑자기 시작된것이 아니라고 생각됬어요. 그렇다면 어디서 시작됬을가 하고 궁금해 졌읍니다. 그러면서 29절과 31절로 돌아가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비겁한 베드로의 모습과 너무도 당당한베드로를 살펴봤읍니다.

예수님께서 “너의들이 다 나를 버리리라” 말씀하셨을때, 베드로는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내가 주와 죽을지언정, 나는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라고 당당하게, 강조를 하면서 선언을 했읍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나 할것같은 사랑과 충성의 선언이고, 자신감이 넘쳐 있었읍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주님이 말씀하셨을때, 그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드리지도 않았고, 에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에서 이해를 했고, 자기의 의지를 말했고, 자기 능력을 믿었읍니다.

베드로는 그때 제자로서의 본분과 그 영역을 넘어 섰고,
바로 그때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시작이 아니엇을가 생각됬어요.

다음은 닭울음 소리에 대해서 입니다.

왜 에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닭울음소리를 말씀하셨을가 하는것이어요.

만약 예수님 께서 베드로에게 동트기전, 아니면, 이밤이 지나기전에 네가 나를 3번 부인하리라 하고 막연하게 말씀하셨다면, 피할수 없는 상황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베드로가 동이 텄는지, 날이 밝았는지 깨닫기는 했을가, 후에 자기가 한 행동을 깨닫고 통곡하고 회개 할때까지 베드로의 삶은 얼마나 고통 스러웠을가, 자책감과 절망으로 완전히 소멸될수도 있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수님께서는 이런상황에 있는 베드로에게 뚜렷한 싸인을 말해주셨고, 적절한 시기에 신호를 보내 주셨다고 생각했읍니다.

베드로가 확실히 듣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고 주님을 다시 바라보게 하신, 주님의 섬세하신 맘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한 베드로를 버리지 않으시고, 정죄도 안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의 눈물입니다.

NIV 어 성경에서는 베드로의 울음에 대해서,

“H e broke down and wept” 라고 했어요. 저는 이 장면에서 베드로가 오열을 하며, 가슴 찟는듯 통곡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더 나아가서 이순간 베드로의 옛모습이 산산조각으로 깨지는것 같았읍니다.

묵상을 정돈해 보면,

1. 베드로처럼 아무리 Intention이 좇다 하드라도,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맘과 열정이 절정에 이를때, 오히려 주님 중심이 아니라 우리중심이 되서 주님의 말씀을 우리 관점에서만 이해할수 있을수 있으며, 그것이 실패의 시작이 될수 있다는것과

2. 피할수 없는 상황에서 베드로가 두려움에 떨며 무너지는것 같이 우리도 무너지지만,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도저히 그 시련을 이겨낼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로서만 이겨낼수있다는 것과,

3.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을때, 베드로는 주님을 다시 보면서 엎드려 통곡할수 하게되고 그 눈물은 승리의 시작이라는것 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끝까지 버리지 않고 주님을 위해 죽는 참 제자가 되었다는것입니다.

이것이 복음, 구원의 요소들이 아닐가 했어요.
저는 오늘 묵상을 통해서 주님을 향한 초점이 흔들리지 않도록, 주님중심에서 저의 중심으로 바뀌지 않기 위해 끊임없는 영적 훈련을 해야 한다는것을 깨달았읍니다.

기도 하시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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